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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2026년 10월까지 공개된 자료를 바탕으로 썼다. 확인된 사실과 그 사실에 대한 나의 해석을 구분하려 했다.
AI 시대의 일을 상상하는 이야기는 점점 혼자가 되는 쪽으로 기운다. 곧 한 사람이 AI만 데리고 10억 달러짜리 회사를 만든다는 것이다. Sam Altman은 테크 CEO들끼리 첫 '1인 10억 달러 기업'이 나오는 해를 두고 내기를 하고 있다고 말했고, Dario Amodei는 그 시점을 2026년으로 꼽기까지 했다. 1인 10억 달러 기업 전망 실제로 직원 두 명으로 올해 18억 달러 매출을 바라보는 회사도 나왔다. 이 회사 이야기는 뒤에서 자세히 하겠다.
나는 반대로 생각한다. AI가 아무리 똑똑해져도 우리는 여전히 같이 일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게 된 계기는 얼마 전 SNS에서 지나가듯 본 한 문장이었다. 기업은 이미 존재하던 초지능이다. 처음엔 말장난처럼 들렸는데, 곱씹을수록 설득력이 있었다.
이 문장이 맞다면 질문이 바뀐다. 1인 기업론은 AI라는 새 초지능이 기업이라는 옛 초지능을 대체한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먼저 물어야 할 것은 두 초지능이 어떻게 다르고, 각자 무엇을 잘하느냐다.
이 글에서 따라갈 순서는 이렇다.
기업은 어떤 초지능인가 → 그 초지능은 무엇을 잘하는가 → 기업의 병목은 무엇이었나 → 가장 강한 반론과 그 시험대 → 그래도 우리가 같이 일할 이유
초지능은 이미 있었다
기업을 인공지능에 빗댄 사람이 처음은 아니다. SF 작가 Charles Stross는 2017년 강연에서 인공지능은 이미 개발되었다고 말했다. 시기는 "1553년보다 이르지 않고 1844년보다 늦지 않다." 그가 가리킨 것은 회사였다. 아주 오래되고 아주 느린 AI. Dude, you broke the future!
정치학자 David Runciman도 『The Handover』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우리는 이미 300년 동안 AI와 살아왔고, 국가와 기업이 그 AI라는 것이다. 그가 보기에 국가와 기업은 스스로 선택을 내리고, 무엇보다 그 선택의 결과를 짊어지는 의사결정 기계다. The Handover 기업은 결국 사람으로 이루어져 있으니 AI에 빗대기엔 어긋난다는 비판도 있다. Open Letters Review 나는 그 어긋남이 오히려 이 글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초지능'이라도 결이 다르기 때문이다. Nick Bostrom은 『Superintelligence』에서 초지능을 세 종류로 나눴다. 사람이 하는 일을 훨씬 빠르게 하는 속도 초지능, 작은 지능 여럿이 모여 어떤 개체보다 뛰어난 성과를 내는 집단 초지능, 사람과 질적으로 다른 수준으로 생각하는 질적 초지능이다.
기업은 집단 초지능에 가깝다. 한 사람은 비행기를 만들 수 없지만 회사는 만든다. 한 사람은 수십 개 나라에서 동시에 물건을 팔 수 없지만 회사는 판다. 대신 느리다. 결재를 기다리고, 회의를 하고, 사람 사이의 오해를 풀어야 한다.
반면 지금 AI가 약속하는 것은 주로 속도와 질이다. 더 빨리, 더 깊이 생각하는 것. 그러니 1인 기업론을 조금 더 정확히 옮기면 이렇다. 속도와 질의 초지능이 집단 초지능을 대신할 수 있다.
이 기대가 맞는지 보려면 집단 초지능인 기업이 실제로 무엇을 잘하는지부터 알아야 한다. 그 힌트는 뜻밖에도 신에게 있다.
신이 하던 일을 넘겨받은 것
AI를 두고 "우리가 신을 만들고 있다"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듣는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한다. 신이 하던 아주 중요한 일 하나는 이미 오래전에 다른 존재에게 넘어갔다고.
1651년 Thomas Hobbes는 『리바이어던』에서 국가를 "인공 인간"이라고 불렀다. 사람들이 서로 계약해 하나의 인격으로 묶일 때 태어나는 이 존재를, 그는 조금 더 경건하게 "필멸의 신"이라고도 했다. 불멸의 신 아래에서 우리에게 평화와 방어를 주는 존재다. Leviathan
거인의 몸을 자세히 보면 수많은 사람으로 이루어져 있다. 홉스가 그린 것은 국가였지만, 오늘날 이 그림이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은 어쩌면 회사일지도 모른다.
Yuval Noah Harari는 『사피엔스』에서 같은 이야기를 푸조로 풀었다. 푸조의 공장이 모두 무너지고 직원이 모두 떠나도 푸조는 다시 돈을 빌리고 사람을 뽑을 수 있다. 반대로 법원이 해산을 명령하면 공장과 사람은 그대로인데 푸조만 사라진다. 푸조는 우리가 함께 믿는 이야기 속에만 존재한다. 그래서 Harari는 현대의 사업가와 변호사가 사실상 강력한 주술사이며, 부족의 주술사와 다른 점은 훨씬 이상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뿐이라고 썼다. Sapiens
눈여겨볼 점이 있다. 홉스도 Harari도 이 거대한 존재의 힘을 똑똑함에서 찾지 않았다. 리바이어던의 힘은 사람들 사이의 계약에서, 푸조의 힘은 수많은 사람이 함께 믿는 이야기에서 나온다.
신이 하던 일 중 하나는 서로 모르는 사람들을 하나의 이야기 아래 묶어 같이 움직이게 하는 일이었다. 국가도 그 일을 넘겨받았지만, 매일 아침 수억 명을 같은 목표로 출근시키는 것은 회사다. 그런 의미에서 기업은 신을 대체했다기보다, 신이 하던 가장 실용적인 일을 넘겨받았다.
정리하면 이렇다. 기업이라는 초지능의 핵심 능력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낯선 사람들을 같이 일하게 만들고 그 결과를 책임지는 것이다. Runciman이 말한 '결과를 짊어지는' 능력도 여기에 속한다. 이 글에서는 이것을 줄여서 묶고 책임지는 일이라고 부르겠다.
기업의 병목은 지능이 아니었다
이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기업은 수백 년 동안 생기고 망하고 다시 생기며 다듬어졌다. 지능을 한곳에 몰아넣는 것이 사업의 성패를 가르는 결정적 요인이었다면 기업은 그쪽으로 진화했을 것이다. 그런데 성공한 기업 대부분은 그렇게 생기지 않았다. 왜일까.
기업의 목적이 애초에 지능만으로 풀리는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Peter Drucker는 1954년 『The Practice of Management』에서 사업의 목적에 대한 유일하게 타당한 정의는 고객을 창출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기업의 기본 기능은 마케팅과 혁신, 단 두 가지라고.
고객을 찾는 일도 결국 머리 쓰는 일 아니냐고 물을 수 있다. 그 답은 Friedrich Hayek에게 있다. 그는 1945년에 이미 경제의 핵심 문제가 처음부터 사람들 사이에 흩어져 있는 지식을 어떻게 활용하느냐라고 지적했다.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 대한 지식, 이 동네 사람들이 무엇을 불편해하는지, 저 거래처 담당자가 무엇을 믿는지 같은 것들이다. The Use of Knowledge in Society
이런 지식은 아무리 좋은 머리에도 저절로 모이지 않는다. 고객을 아는 일은 한 명의 천재가 아니라 여러 사람이 각자의 자리에서 조금씩 해내는 일이다. 사람들을 같이 일하게 만드는 능력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차이가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 곳이 있다. 1970년대 중반 Xerox의 연구소 PARC에는 세계 상위 100명의 컴퓨터 과학자 중 거의 절반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마우스와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갖춘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 Alto를 만들었다. Fumbling the Future
그런데 그 미래를 시장에 내놓은 것은 Xerox가 아니었다. 1979년 PARC를 방문한 Steve Jobs의 Apple이, 그리고 Microsoft가 그 일을 했다. PARC 출신들이 나가서 차린 Adobe도 있었다. PARC의 기술은 화려하게 상업화되었지만 Xerox의 손으로는 아니었다. Alto's Offspring
같은 회사 안에, 같은 목적 아래, 당대 최고의 지능이 모여 있었다. 적어도 내가 읽기에 PARC에 부족했던 것은 지능이 아니었다. 그 발명을 원하는 고객을 찾고, 팔 수 있는 형태로 만들고, 회사 전체를 그 방향으로 움직이는 일이었다.
지능은 늘 오래된 초지능에 기대 왔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지능과 이 오래된 초지능의 관계가 더 선명해진다.
1610년 갈릴레오는 망원경으로 목성의 위성 네 개를 발견하고 '메디치의 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후원자인 토스카나 대공 코시모 2세 데 메디치를 기리고, 아마도 추가 후원을 바라는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AAS
그림: 갈릴레오 갈릴레이, 『별의 전령(Sidereus Nuncius)』(1610) 속표지. 저자 이름 아래에 '파도바 대학의 수학자'라는 직함이, 아래쪽에 'MEDICEA SIDERA(메디치의 별)'가 크게 적혀 있다. Houghton Library 소장. 원문, 퍼블릭 도메인. 크기 조정 외 변경 없음.
속표지를 자세히 보면 재밌는 점이 있다. 이때 갈릴레오는 이미 파도바 대학의 수학자였다. 당대에 지능이 가장 많이 모인 곳에 있었던 셈이다. 그런데도 그는 메디치 궁정의 자리를 원했다. 궁정의 자리는 '하찮은' 수학자였던 그의 신분을 올려 주고, 그의 발견에 사회적 정당성을 더해 줄 수 있었다. University of Toronto
인류 역사에서 가장 빛나는 지능 중 하나가 은행업으로 부를 쌓은 한 가문의 이름을 하늘에 새겼다. 지능은 언제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하지만 그 가능성을 세상에 실어 나르는 일은 대개 가문이나 기업 같은 오래된 초지능에 기대어 있었다. 천재도 혼자 일하지 않았다.
가장 강한 반론: 지능은 원래 복제할 수 없었다
여기까지의 이야기에는 큰 구멍이 하나 있다. 솔직히 꽤 강한 반론이다.
기업이 지능을 한곳에 몰아넣지 않은 것은 그게 쓸모없어서가 아니라 불가능해서였을 수 있다. AI 이전에는 지능을 쓰려면 사람을 고용해야 했다. 지능은 사람의 몸에 묶여 있었고, 복제할 수도 한 사람에게 몰아줄 수도 없었다. 그러니 과거에 1인 거대 기업이 없었다는 사실은 미래를 말해 주지 않는다. AI가 바꾸는 것이 바로 그 전제다.
경제학의 언어로도 이 반론을 세울 수 있다. Ronald Coase는 1937년 기업이 왜 존재하는지를 물었다. 그의 답은 거래비용이었다. 정보를 찾고, 협상하고, 계약을 지키게 만드는 비용이 시장보다 조직 안에서 더 쌀 때 기업이 생긴다. AI가 이 비용을 극적으로 낮춘다면 기업은 작아져야 한다. 1인 기업론의 가장 단단한 근거가 여기에 있다. From Coase to AI Agents
나는 이 반론의 절반은 맞다고 생각한다. 나머지 절반을 보려면 앞에서 구분한 두 초지능으로 돌아가야 한다.
Coase가 말한 거래비용을 다시 보자. 정보를 찾고 협상안을 짜는 일은 생각하는 비용에 가깝다. 시장 조사, 계약서 초안, 가격 비교 같은 일이고, AI는 이미 이 비용을 크게 낮추고 있다. 속도와 질의 초지능이 잘하는 일이다.
하지만 계약을 실제로 지키게 만드는 일, 일이 잘못됐을 때 책임지는 일, 낯선 사람이 나를 믿게 만드는 일은 다르다. 이것은 법적 인격과 평판과 관계의 문제다. 앞에서 본 기업이라는 초지능의 본업, 곧 묶고 책임지는 일이다. AI는 이 비용을 생각하는 비용만큼 쉽게 낮추지 못한다.
오히려 반대 방향의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Bostrom의 정의를 다시 떠올리면, 집단 초지능은 구성원을 더하거나 더 잘 조직하면서 똑똑해진다. AI 에이전트는 기업에게 새로운 구성원이다. 기업은 AI를 받아들이며 인원을 줄일 수는 있어도, 그건 기업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더 강해지는 것이다.
말로만 하면 공허하니, 1인 기업론의 가장 강력한 증거로 꼽히는 회사에 이 주장을 대 보자.
혼자 일하는 것처럼 보였던 회사
올해 4월 New York Times가 소개한 Medvi다. 창업자 Matthew Gallagher는 2만 달러와 열 개 넘는 AI 도구로 두 달 만에 회사를 세웠다. AI로 웹사이트 코드를 짜고, 광고 이미지와 영상을 만들고, 고객 응대를 맡기고, 사업 성과를 분석했다. GLP-1 비만약 원격진료 회사 Medvi는 첫해인 2025년 4억 100만 달러 매출을 냈고, 올해는 18억 달러를 바라본다. 직원은 나중에 합류한 동생까지 두 명이다. NYT 보도 재게재
앞의 구분으로 들여다보면 그림이 달라진다. Medvi가 AI로 해결한 것은 코드, 광고, 고객 응대, 분석이다. 모두 생각하는 일이다. 반면 의사와 처방, 약품 유통과 배송, 규제 준수는 CareValidate와 OpenLoop Health라는 플랫폼에 맡겼다. Drug Discovery & Development 면허를 가진 사람들을 같이 일하게 만들고 그 결과를 책임지는 일이다.
문제가 불거진 곳도 정확히 신뢰와 책임의 영역이었다. 보도 직후 FDA가 이미 Medvi에 경고를 보낸 적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Medvi가 OpenLoop 네트워크에 속한 거의 똑같은 원격진료 매장 십여 개 중 하나라는 주장이 담긴 소송도 나왔다(Medvi는 피고가 아니다). 초기에는 AI 챗봇이 있지도 않은 가격과 상품을 지어내, 창업자가 직접 그 가격을 맞춰 주며 수습하기도 했다. citybiz
Medvi의 성과를 깎아내리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회사는 혼자 일한 것이 아니었다. 직원 명단에 없을 뿐, 수많은 의사와 약사와 배송 담당자와 같이 일하고 있었다. 생각하는 일은 AI가 놀랍도록 잘 해냈지만, 묶고 책임지는 무거운 일은 다른 기업들이 짊어졌다. 1인 기업은 기업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기업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옮겨간 것에 가깝다. 창업자 본인도 이렇게 말했다. "이쯤 되니 외로워서 사람을 뽑고 싶다." NYT Quote of the Day
숫자로 보면 더 분명하다. 1인 기업은 사실 새로운 형태가 아니다. 2022년 미국 사업체 3,570만 개 중 2,980만 개가 직원 없는 사업체였다. 열에 여덟이 넘는다. 그런데 이들의 매출 합계는 1조 7천억 달러로, 전체 51조 7천억 달러의 3% 남짓이다. U.S. Census Bureau
혼자 하는 사업은 이미 가장 흔하지만, 경제의 무게는 사람들이 같이 일하는 조직에 실려 있다. AI가 이 숫자를 얼마나 움직일지는 지켜봐야 한다. 하지만 Medvi 같은 회사조차 다른 기업의 네트워크 위에 서 있다면, 무게중심이 혼자 쪽으로 옮겨가기보다는 네트워크가 더 촘촘해질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우리가 계속 같이 일할 이유
그렇다면 초지능의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일하게 될까. 나는 여전히 같이 일하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앞에서 본 책임이다. AI는 판단을 대신할 수 있어도, 판단이 틀렸을 때 법정에 서거나 고객에게 사과하지 않는다. Medvi의 창업자가 챗봇의 실수를 직접 메웠던 것처럼, 결과를 감당하는 일은 결국 사람과 조직에게 돌아온다. 그리고 큰 책임은 혼자 질 수 없다.
둘째는 관점이다. Lu Hong과 Scott Page는 2004년, 능력이 제한된 사람들을 무작위로 모은 집단이 가장 능력 있는 사람들만 모은 집단보다 대체로 문제를 더 잘 푼다는 모델을 발표했다. 능력자들은 서로 비슷하게 생각해서 같은 곳에서 막히기 때문이다. Hong & Page
공정하게 말하자면 이 결과는 논쟁 중이다. 수학자 Abigail Thompson은 이 모델의 수학에 본질적인 오류가 있다고 비판했고, 이를 다시 반박하는 연구도 나왔다. Thompson의 비판, 반론 그래서 나는 이 연구를 증명이 아니라 직관을 정리하는 도구로 읽는다.
여기서 자연스러운 반문이 나온다. 다양한 관점이 중요하다면, 충분히 똑똑한 AI 하나가 여러 관점을 흉내 내면 되지 않을까.
나는 다시 Hayek으로 돌아가고 싶다. 사업에서 중요한 관점은 머릿속 사고방식만이 아니다. 서로 다른 자리에서 서로 다른 고객과 현장을 겪으며 생긴 지식이다. 흉내 낼 수 있는 스타일이 아니라 그 자리에 있어야만 얻을 수 있는 정보다. AI가 모든 자리에 동시에 서 있을 수 없는 한, 세상을 여러 자리에서 바라보는 일은 여전히 여러 사람의 몫이다.
그래서 나는 이것이 현대 기업이 향하는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서로 다른 고객과 현장을 보고, 그 시선을 하나의 이야기 아래 모으는 것. MIT의 Thomas Malone은 위계, 시장, 공동체 같은 집단 지성을 '슈퍼마인드'라 부르며 이것이 컴퓨터와 함께 더 똑똑해질 거라고 말했다. Superminds 초지능은 이 슈퍼마인드를 대체하기보다 그 안의 아주 강력한 동료가 될 가능성이 크다.
같이 일하는 방식은 바뀐다
같이 일한다고 해서 기업이 지금 모습 그대로 남는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나는 기업이 또 한 번 도약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지능이 부족해서 혁신이 더뎠던 분야들이 있다. 신약 개발, 소재, 기초과학 같은 곳이다. 이런 곳에서 AI는 처음으로 지능 자체를 병목에서 풀어 줄 수 있다.
눈여겨볼 것은 그 최전선에 선 회사들이 일하는 방식이다. AlphaFold를 만든 Demis Hassabis의 Isomorphic Labs는 첫 파트너로 Eli Lilly와 계약하며 선급금 4,500만 달러와 최대 17억 달러의 마일스톤을 약속받았다. Isomorphic Labs × Lilly 이어 Novartis, Johnson & Johnson과도 손을 잡았다. J&J와의 협력에서는 Isomorphic이 컴퓨터 위의 설계와 예측을 맡고, 실험 검증과 후속 개발은 Janssen이 맡는다. The Pharma Letter
이 구조는 이 글에서 이미 두 번 보았다. 갈릴레오의 지능은 메디치의 후원을 만나 세상에 나왔고, Medvi의 AI는 OpenLoop의 의사와 약국 위에서 돌아갔다. 가장 뛰어난 지능을 가진 회사도 수십 년 동안 임상과 규제와 유통을 쌓아 온 오래된 초지능과 손을 잡는다. 생각하는 초지능과 묶는 초지능이 같이 일하는 것이다.
초지능이 열어 줄 혁신은 분명 새로운 비즈니스를 만들 것이고, 그 비즈니스는 새로운 형태의 기업을 요구할 것이다. 다만 그 형태가 한 사람과 AI만으로 이루어진 회사일 것 같지는 않다. 더 많은 지능과 더 많은 사람과 더 많은 조직이 더 촘촘하게 엮인 무언가에 가까울 것이다.
AI는 생각하는 비용을 놀랍도록 낮춘다. 하지만 기업이라는 초지능이 수백 년 동안 해 온 일은 생각이 아니었다. 낯선 사람들을 같이 일하게 만들고, 그 결과를 함께 짊어지는 일이었다. 그 일은 지능이 싸진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초지능은 이미 있었다. 회사의 모습으로. 새로운 초지능이 왔을 때 그 오래된 초지능이 할 일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새 동료를 받아들이고 더 큰 '우리'가 되는 것이다.
AI가 아무리 똑똑해져도, 그래도 우리는 같이 일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