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근래의 진로 선택(LG AI연구원 EXAONE Lab) 때문에 주변 사람들과 Agentic AI의 활용이나 소버린 AI 등에 대해서 이야기할 일이 종종 있는 것 같다. 그럴 때마다 나의 응답을 요약하면 대략 다음 두 가지다.
[1] 우선 소버린 AI는 ‘모델 하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팀에서 하는 일도 소버린 AI의 아주 작은 한 부분일 뿐이다.
[2] 소버린 AI는 국내 AI 회사들이 단순히 “살아남기 위한 전략” 같은 패러다임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다.
많은 국내 기업들이 소버린 AI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고, 조금씩 정의도 다르다. [1,2,3,4,5] 내가 이해하는 소버린 AI는 조금 더 넓은 개념이다. 단순히 모델을 만드는 것을 넘어, 전력망·통신망·데이터센터 같은 물리 인프라부터 AI 기초 연구, 기반 모델, 그리고 응용 AI까지 이어지는 전체 생태계가 있어야 비로소 의미 있는 AI 개발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이런 산업이 조선업이나 통신망처럼 국가 안보와도 어느 정도 연결된 기반 산업(infrastructure industry) 이라는 것이다. 다른 산업들이 굴러가기 위해 필요한 기반이기 때문에, 결국 우리에게는 이걸 하지 않는 선택지가 사실상 없다.
예를 들어 보자. 만약 미국이나 중국의 프론티어 모델을 만드는 회사들이 우리나라 기업이나 정부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을 제시한다면 어떻게 될까? 혹은 국내 규제나 정책 때문에 특정 영역에서 외국 모델을 활용하기 어려워진다면? 우리나라의 높은 AI 유료 결제 사용자 비율이나 AX 전환 속도를 생각해보면, 이런 상황은 생각보다 큰 생산성 문제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AI 3강” 같은 구호만 외친다고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다. 현실적으로 보면, 반도체나 조선 같은 제조업과 달리 AI는 이미 글로벌 빅테크들이 강하게 자리 잡은 분야다. 우리나라의 경제 규모나 시장 크기를 고려하면 이 분야에서 세계 최상위를 장기적으로 유지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일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지금 유럽이 여러 이유로 AI 경쟁에서 다소 뒤처진 모습이지만, 만약 유럽이 통합된 투자 전략을 가지고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면 상황은 또 달라질 수도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비교 사례가 우리나라의 통신망 산업이다. 글로벌 인터넷 공급자는 사실상 등급(tier)이 명확하게 나뉘어 있고, 같은 등급끼리는 비교적 호혜적인 계약을 맺지만 등급이 낮을 경우에는 상당히 불리한 계약을 맺게 된다. 우리나라는 통신망에 상당한 투자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인구 규모와 영토의 한계 때문에 글로벌 인터넷 공급자 구조에서는 항상 2티어 위치에 머물러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우리가 통신망 투자를 충분히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지금처럼 수많은 유튜버, 넷플릭스 콘텐츠 산업, 다양한 인터넷 기반 서비스들이 이렇게 빠르게 자리 잡을 수 있었을까? 물론 이 뒤에는 더 복잡한 산업 구조와 정책 이야기들이 얽혀 있지만, 적어도 인프라 투자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그래서 긴 이야기를 조금 단순하게 정리하면 결론은 다음과 같다.
[1] 소버린 AI는 모델 하나를 만드는 문제가 아니라, 수십조에서 수백조 원 단위의 투자가 필요한 국가 차원의 기반 산업에 가깝다. 그리고 다른 산업들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어느 정도는 계속 가져가야 하는 영역이다.
[2] 다만 이런 국가 단위 인프라 사업에서는 민간 기업이 직접적으로 큰 이익을 얻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이 인프라 위에서 어떤 응용과 산업을 만들어내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이 이야기는 아마 다음 기회에 따로 써볼 것 같다.
참고자료
[1] 소버린 AI 란?, 셀렉트스타 블로그, https://selectstar.ai/blog/insight/sovereign-ai/
[2] 소버린 AI가 뭐길래? 데이터 주권을 넘어선 AI 주권의 모든 것, 한국딥러닝 블로그, https://www.koreadeep.com/blog/sovereign-ai
[3] 소버린 AI : AI 시대 네이버의 새로운 도전과 과제, 네이버 클로바 블로그
[4] 하정우 "소버린AI가 국뽕?···네이버 어젠다 아닌 대한민국 성장 어젠다”, ZDNet Korea 방은주 기자
[5] 소버린 AI(Sovereign AI)란?, NVIDIA Korea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