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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30살에 다시 생각해보는 ‘중용’이라는 균형

부제
CartPole에서 시작해, 인생이라는 다중 진자 위에서 균형을 잡는다는 것
작성일
2026/04/04

본문 (ChatGPT Generated)

“중용(中庸)”이라는 단어를 처음 배웠을 때, 나는 그것을 꽤 단순하게 이해했다.
넘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은 상태. 딱 적절한 균형.
이 개념을 가장 직관적으로 느꼈던 건 의외로 철학 책이 아니라, 강화학습 환경 중 하나인 CartPole이었다.
카트 위에 올려진 막대기가 쓰러지지 않도록 좌우로 움직이며 균형을 맞추는 문제.
처음에는 이게 중용의 완벽한 예시라고 생각했다.
균형을 유지하면 되고, 무너지지 않으면 되는 문제.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깨닫게 된다.
인생은 CartPole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막대기’ 하나였다면,
이제는 이중진자, 삼중진자처럼 점점 복잡해진다.
직장이라는 축
가족이라는 축
경제적 책임이라는 축
그리고 나 자신이라는 축
각각이 서로 영향을 주며 흔들린다.
게다가 환경도 고정되어 있지 않다.
바람이 불고, 땅이 흔들리고, 예측할 수 없는 외부 변화가 계속 들어온다.
나라는 카트 또한 변한다.
어느 날은 새로운 능력이 생기고,
어느 날은 번아웃으로 속도가 느려진다.
이쯤 되면 ‘균형을 유지한다’는 건 더 이상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끊임없이 무너지고, 다시 맞추고, 다시 배우는 과정에 가깝다.
이 시기는 더더욱 그렇다.
박사 과정을 마치고 사회에 나와 일을 시작하고,
결혼을 하고, 한 사람과 인생을 함께 살아가기 시작하고,
자산 증식을 고민하고, 미래를 준비하면서도
지금의 행복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능력은 올라갔지만,
그만큼 책임도, 신경 써야 할 변수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그래서인지, 어느 순간부터는
외부의 사건보다 내 상태가 더 크게 작용한다는 걸 느끼게 된다.
같은 말, 같은 상황이어도
내가 괜찮은 날에는 아무렇지 않게 넘기지만
지쳐 있는 날에는 이상하게 더 크게 다가온다.
그래서 나는 한동안
타인의 행동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무례한 말, 날 선 태도, 예상치 못한 반응들을 보면서
“왜 저럴까” 대신
“지금 많이 지쳐 있겠구나”라고 해석하려고 했다.
이 생각은 허준이 교수의 축사 속 한 문장에서 더 단단해졌다.
“여러 변덕스러운 우연이, 지쳐버린 타인이, 그리고 누구보다 자신이 자신에게 모질게 굴 수 있으니 마음 단단히 먹기 바랍니다.”
‘지쳐버린 타인’이라는 표현은
이상하리만큼 따뜻하게 느껴졌다.
타인의 무례함을
그 사람의 본질이 아니라
어떤 과정의 결과로 이해하게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또 다른 방향의 생각에 닿게 된다.
“어쩌면, 지쳐 있는 건 나일 수도 있지 않을까?”
상대가 특별히 더 날카로워진 것이 아니라,
내가 더 예민해진 상태일 수도 있다.
돌아보면 그런 날들이 분명히 있다.
유난히 모든 말이 거슬리고,
사소한 표정 하나에도 의미를 붙이고,
별것 아닌 일에도 감정이 흔들리는 날.
그럴 때의 나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피로를 통해 과대해석하고 있는 상태에 더 가깝다.
이 지점에서
‘지쳐버린 타인’이라는 프레임은
조금 더 확장된다.
타인이 지쳐 있을 수도 있고,
내가 지쳐 있을 수도 있다.
혹은 둘 다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누가 더 맞는지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불확실한 상태 속에서어떤 태도를 선택할 것인가다.
그래서 요즘의 나는
하나의 질문을 습관처럼 던진다.
“지금 이 감정은 어디에서 온 걸까?”
상대 때문인지,
내 상태 때문인지,
혹은 그 둘이 섞인 것인지.
이 질문 하나만으로도
반응은 꽤 달라진다.
즉각적으로 튀어나올 수 있었던 감정이
한 템포 늦춰지고,
그 사이에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최근 내가 내린 답은 여전히 단순하다.
“열심히 하되, 친절하게 살자.”
이 생각은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속 웨이먼드의 대사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Please… be kind. Especially when we don’t know what’s going on.”
우리는 대부분의 상황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상대의 맥락도,
내 감정의 정확한 원인도,
완전히 이해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더더욱
친절은 하나의 안전한 선택지가 된다.
돌이켜보면,
중용은 정적인 균형이 아니라
동적인 복귀 능력에 가깝다.
흔들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흔들린 이후에 어떻게 돌아오는가.
그리고 그 복귀의 방식이
타인을 향해 조금 더 부드럽고,
나 자신에게도 조금 덜 가혹하다면,
그 자체로 이미
중용에 가까운 상태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요즘 이렇게 생각한다.
타인의 무례함을 마주했을 때
“왜 저럴까”라고 단정짓기 전에,
저 사람은 지금 많이 지쳐 있을 수도 있고
혹은 내가 지금 지쳐 있어서 더 크게 느끼는 걸 수도 있다
이 두 가지 가능성을 동시에 열어두는 것.
결국 오늘도 나는
동료들에게,
친구들에게,
가족에게,
아내에게,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 자신에게
조금 더 친절하게 대하려고 한다.
타인의 지침을 이해하려는 시선과,
내 상태를 돌아보려는 인식.
그 둘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가는 것.
이 복잡하고 불확실한 세상 속에서
완벽한 균형은 불가능할지라도,
부드럽게 복귀하는 방법은 선택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
나는 오늘도 ‘친절’을 선택한다.
그것이 지금의 내가 이해한,
가장 현실적인 ‘중용’의 모습이다.

Reference

[1] 리디북스 도서 링크 — https://ridibooks.com/books/682000607
[2] 리디북스 도서 링크 — https://ridibooks.com/books/606001274
[4] Waymond’s “Be Kind” Speech (YouTube) — https://youtu.be/uTcU2NQYZ9w
[5] 허준이 교수 서울대 졸업식 축사 — https://youtu.be/Zhwmlbo4TCc?t=234